뭐고, 다들 갑자기 와그라는데


<들어가며>
부산까지 가서 프로젝트를 했으면, 소주는 못마셔도 바다사진 하나는 건져왔어야 했는데 해운대 바다냄새가 매번 코끝을 스쳤음에도, 6번 미팅하는 내내 한 번도 바다를 보지 못했다는 슬픈 사실.


그렇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부산 지역을 대표하는 온라인/모바일게임 회사. 위키에 쳐보면 죽어가는 게임 예토전생시켜 극강의 부활체로 만든다는 만렙소서러 기업, 마상소프트였습니다.


솔직히 처음 기업명 들었을 때는 여러분들도 그렇겠지만 갑자기 마음의 상처 입은 것처럼 마음이 시려오고 그랬단 말야. 하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이게 무슨 서로 밭을 일구며 돕는 상부상조 느낌의 그런 고귀한 뜻이더만요. [마음의 상처] 아니에요?...라고 물어보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


클라이언트 소개를 잠깐 하자면, 마상소프트는 어언 20년 된 놀라운 게임회사입니다. 모바일게임이 판치던 시기, 오히려 주춤하던 PC게임 영역을 공략하며 저평가된 게임들에 가져와 산소호흡기 꽂고 포도당 맞춘 뒤 맞춤PT로 건강하게 만들어버렸죠. 기존 유저들은 신이 났고, 뉴비들은 신기했고, 게임회사들은 눈이 휘둥그래졌을 겁니다. [저게 된다고?] 싶은 기염을 토하며 부산을 대표하는 게임회사로 성장했죠.

마상소프트의 게임들마상소프트의 게임들




<컬처덱>


컬처덱을 시작하게 된 건 부사장님 덕분이었습니다. 조직문화에 고민하시던 와중, [컬처덱] 책을 발견했고 이걸 쓴 사람을 찾아오라는 지시를 하신 것이죠.


이 사람을 찾아와라
아윌킬...?

실제로 가보니 마상소프트는 다채로운 조직문화를 실험하고 있었어요.

자체 LMS로 서로의 노하우나 지식을 강의콘텐츠를 만드는 시도도 했었고,

업무시간을 3개로 쪼개서 타임블록 형태로 관리하기도 했어요.

4시가 되면 브레이크타임을 갖는 특별한 제도도 있었죠.


하지만 무엇보다 부사장님이 원하셨던 건 [프로젝트 베이스]의 업무구조였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특성상 딱 정해진 직무와 역할, 과업을 수행하는 것이 익숙한데, 부사장님이 원하셨던 건 [본업은 본업대로 두고, 회사에 필요한 다채로운 과업을 프로젝트로 수행하는] 모습이었어요. 병행업무인 것이죠. 


여기서 생기는 문제가 당연히 본업과 병행업무로 인한 업무과중인데,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본업의 루틴들을 자동화/외주화 시키거나, 다양한 업무들을 AI로 개선하고 있었어요.


제가 컬처덱을 다 만들었을 때쯤, 마상소프트가 실험하던 건 챗GPT를 이용해 유저들의 문의에 자동응대하는 것이었어요. 챗GPT가 멍청대답하는 것을 방지하려고 마상소프트의 DB를 통해 연산하도록 알고리즘을 만들더라고요. 그러자 응답정확도가 쭉 올라감. 신기방기...



아 개발자들이 모여있으면 이런 것이 가능하구나..라고 문과는 생각합니다.😮

뭐든 가능하다.뭐든 가능하다.


그럼에도, 이런 프로젝트 베이스의 업무가 사실 우리나라 정서에는 좀 익숙하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어지간한 일쟁이가 아닌 이상, 내가 스스로 일을 만들어 사이드업무까지 병행하는 것이 부담이기도 하겠죠. 그러나, 게임회사란 것은 결국 끊임없이 실험의 연속인지라... 뭔가 [안정되게] 내 일만 한다는 게 애시당초 불가능하잖아요. 좋든 싫든 이제 프로젝트를 만들고, 실제로 참여하고, 빠르게 성과를 내는 문화가 필요해졌어요.




<첫인상>


그럼에도 솔직히 처음 미팅갔을 때 좀 쫄렸어. 사실 부산 프로젝트는 예전 소개서 만들때나, IR만들때도 몇 번 가봤었거든요. 늘 기억이 좋아서 부산 프로젝트는 얼웨이즈 환영인데, 사실 미팅하려고 딱 앉았을 때 뭔가....근엄진지해서 약간 심장쫄깃. 근데, 나중에 정식 워크샵 할 때 보니까... 이 분들 엄청 내적관종에, 머리는 뜨겁고 입은 무거운 타입. 하지만 멍석깔아주면 입도 와다다다다...


초반에 뭔가 목소리깔고 바리톤 느낌으로 진행해야 하나...고민했었는데 응 그거 아니고, 그냥 수줍은 사람들이었던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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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내내 매일 5시간씩 아주 고된 워크샵을 진행하며 의견들을 모았단 말이죠. 난 이렇게까지 막 열정적으로 할 줄 몰랐거든요. 하지만 이 분들 지치지 않아. 별 말이 많진 않은데... 졸지도 않아. 중간 텀은 다들 조용한데 또 뭔갈 물어보면 엄청 불타올라. 약간 냉온탕 냉수마찰하는 기분으로 10시간을 보내보았습니다. 



<주문>


컨셉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나 고민이 많았죠. 먼저 마상소프트의 고객과 우리를 규정하는 멘트는 꽤나 멋지게 구성해봤어요. 유저들은 그래. 현실에선 3만원짜리 낚싯대로 저수지가서 낚시하지만, 게임에서만큼은 풀셋을 갖추고 참다랑어를 낚아올린다고. 심지어 출근길에 말이지. 


게임이 주는 가장 큰 메리트는 작은 성취감으로 내 일상을 채울 수 있다는 점인 것 같아요. 꼭 현실에서 느끼는 성취만이 진짜 성취는 아니거든. 결국 게임을 하는 나와 현실을 사는 나는 모두 같은 사람이잖아요? 게임에서 해낸 기분을 현실로 가져올 수도 있는거지. 현실의 서글픔을 게임에서 달랠 수도 있는거고.


그래서, 우리가 제공하는 가치는. 명확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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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젠 원칙과 행동양식을 규정해야 하는데 말야. 


실제 구성원들의 행동양식을 어떻게 쓸까 고민했단 말이에요. 대부분 느끼고 있는 문제점과 개선해야 할 지점들이 일치하고 있어서 포인트를 잡는 것은 쉬웠지만, 그걸 컬처덱으로 어떻게 해결할지는 오히려 어려웠어요.


  • 흠... 사실 이토록 수줍고 조용한 사람들이지만, 마음은 뜨거워. 
  • 그렇다면 문제는 뭐다? 맞다~ 입을 열어야 한다. 
  • 문화라는 게 마음만 갖고 있고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안되는 거잖아요? 
  • 그래서 강제로라도 입을 열어보자. 
  • 하다보면 행동이 바뀔거다! 


라는 가설로, [주문]을 적기 시작했어요. 




실제로 유희왕 카드를 엄청 공부함...실제로 유희왕 카드를 엄청 공부함...


첫 타겟은 회의였습니다. 다들 일하다가 혼잣말 하지 않잖아요. 회사에서 점심시간과 담배타임빼고 가장 말을 많이 해야하는(그러나 가장 조용한) 시간이 회의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이곳부터 공략하자!! 생각했죠. 마치 던전처럼.


핵심가치에 기반해 회의실에서 반드시 해야하는 9가지 문장을 설계했어요. 설계만 해놓으면 다들 안쓰겠지? 그래서 문장을 말할 때 발동되는 특수효과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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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을 외친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하게 되고, 주문자의 의견이 끝날 때까지 다른 사람은 그의 의견을 끊어나 딴 짓을 할 수 없습니다. 광역스턴을 거는거지. 


이런 식의 발동효과를 하나씩 설계해놨어요. 가끔씩 어려운 말을 해야하거나, 실질적인 책임을 져야할 때는 성장포인트(Growth Point) 라고 해서 보상을 획득하게끔 시스템을 설계했습니다. 성장포인트는 쌓여서 연말이나 특정시기에 보상으로 교환할 수 있도록 개발중이랍니다.

아..아니 이런 말을 하진 말고...아..아니 이런 말을 하진 말고...



그렇게해서 만들어진 컬처덱이 바로... 두둔, 9 SPE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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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렇게, 마상소프트의 고객과 기업의 정체성.
  • 우리가 왜 프로젝트 베이스로 일을 해야 하는지.
  •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어떤 [말]들이 오고가야 하는지를

정의내렸어요.


프로젝트라는 단어가 너무 업무적이고 부담감이 심해서, 게임회사에 걸맞게 [파티 party]라는 이름으로 바꾸었습니다. 인던에 보스몹잡으러 가는 파티원들처럼, 하나하나의 문제를 뿌시는 팀인 것이죠. 물론 이름 하나 바뀌었다고 뭔가 갑자기 대단한 변화가 생기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물이 완성되고 1주일 후, 마지막 엔딩세레모니를 위해 부산에 다시 내려갔어요. 그 때 들은 이야기는 

[그럼에도 왜 컬처덱을 만들어야 하는지] 를 다시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실제로 입으로 말하긴 아직 어려운데, 그래도 회의할 때마다 [이 때, 이런 말을 하면 될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딱 들더라고요."

"어색하긴 한데, 카드같은 거 만들어서 실제로 가지고 들어오게 하면 게임처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회의에서 시작하지만 나중엔 다른 곳에서도 이런 문장이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아, 이렇게 씨앗이 되는구나!!
회의에서 솓구치는 말하고 싶은 욕구회의에서 솓구치는 말하고 싶은 욕구


당장 내일부터 모든게 바뀌는 게 아니었어요. [회의실에서 해야할 주문이 있다고?] 이 작은 사실 하나가 사람들에겐 다채로운 상상력을 부여하고 또 이건 어떨까 저건 어떨까?... 두렵고 어색하고 뭐야뭐야 싶지만, 그래도 재미있겠다 해보자. 이 작은 꿈틀댐을 만드는 씨앗이 되더라고요.


무언가가 글로 적힌다는 건 그런 것인 것 같아요. 글은 결국 이미지를 압축해놓은 것이잖아요. 글을 읽는 사람들은 각자 압축을 풀어 자신의 그림으로 기대를 그리는 것 같아요. 그 그림이 완벽히 일치될 순 없지만 적어도 어떤 바운더리 안에서 비슷한 그림이 그려진다는 것이 신기하죠. 


마상소프트의 무한한 건승과, 올해 만들어질 새로운 성장포인트 제도들. 그리고, 계속되는 실험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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