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서울대학교병원은 본원이 있고, 강남센터가 있습니다. 강남센터는 건강검진을 하는 곳이죠. 본원이 '치료'를 하는 곳이라면 강남센터는 아프기전에 '예방'과 '검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본원이 오늘을 만든다면, 강남센터는 내일을 만드는 곳이죠. 저희 장인어른께서도 이번에 여기서 건강검진을 받으셨어요. (급TMI)
강남센터엔 300여명의 의사, 간호사 등 다양한 직군의 멤버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를 거치며 꽤나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해요. 끈끈했던 동아리 활동 (병원은 의외로 이런 활동이 진짜 많습니다. 그리고 기대 이상으로 이런 동아리, 커뮤니티 활동에서 즐거움을 많이 찾으시더라고요. 슬의생의 밴드같은 느낌이랄까...)도 많이 줄어들었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입사했고, 원격근무, 마스크, 비말차단 아크릴판 등으로 서로의 소통엔 한 겹 장막이 생긴 후였습니다. 작년 9월 강남센터는 20주년을 맞이했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 시발점이 바로 컬처덱의 제작이었죠.
병원의 특성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일단, 병원은 생각보다 조직문화 활동을 많이 해요. 이미 조직문화 TF가 몇 년째 활동하고 있었던 상태였어요. 친절하고 배려넘치는 소통을 위한 캠페인도 하고 전사서베이도 하고 팀별 밍글링도 하고... 굉장히 이런저런 활동들이 많았더라고요.
그러나 벽에 붙어있는 핵심가치나 '고객중심 선언문'같은 표어를 제외하곤 기업처럼 하나의 목표를 위한 가치체계나 일하는 방식 등이 규정되어 있진 않았어요. 그도 그럴 것이 부서별로 너무도 업무가 다르기도 하고, 의료 업계 특성상 위계를 무시할 수도 없었어요. 기업처럼 팡!! 성장해서 IPO를 할 것도 아니고, 신기술이나 신제품 개발로 고객을 우와아아악 끌어모으는 비즈니스도 아니니까요.
어찌보면 잔잔하게 우상향하는 루틴과 안정성의 반복이랄까요. 생명을 다루는 곳이니 윤리와 지식축적, 연구, 서비스마인드같은 [엄격함과 체계]가 훨씬 중요한 것이죠.
이런 느낌을 상상하고 갔습니다. 막상 그렇지는 않더라는.
엄격쓰
하지만, 또 막상 만나봬니 그런 건 아니더라고요. 한 분 한 분은 모두 다정하셨고 유쾌했고 역시나 똑똑하셨습니다. (물론 극T의 향기를 풍기시는 분들도 있었음)
이번 프로젝트를 제안해주시고 함께 했던 교수님은 이 강남센터의 초창기부터 함께 해오신 분이셨어요. 나중에도 얘기하겠지만, 교수님의 전폭적인 지지와 배려가 없었다면 진짜 끝까지 하기 힘들었을 거에요. 정말 거의 혼자서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시는 걸 보면서... 뭔가 안쓰럽고 막 눈물나고... 헥소고지같고...
하..한 문장이라도 더 살려야해!!...
여튼 만드는 과정은 꽤나 섬세했습니다.💦
컬처덱이 무엇이냐?
5번의 설명
뭔지도 모르는 걸 만들면서 협조를 구할 순 없습니다. 게다가 컬처덱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기도 하고요. 미션, 비전, 핵심가치같은 것이 벽에 적혀있긴 하지만요.
소오오올직히 말해서 컬처덱엔 그런 비전하우스 느낌의 가치체계를 적는 게 아니에요. 사실 원래 컬처덱을 퍼뜨렸던 실리콘밸리의 어떤 컬처덱에도 미션, 비전, 핵심가치...이런 게 적혀있진 않거든요. 본인들이 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일해야 성장하는지에 대해 설명해놨을 뿐이죠. 하지만 국내의, 게다가 [큰] 조직에게는 생소하고 이상한 자료임이 분명할 거에요. 그래서 처음에 이걸 설명하는데 꽤 많은 시간을 쏟았습니다.
한참 설명!
- 우선 원장님 미팅을 진행하며 개념을 설명했어요.
- 부원장님 미팅을 진행하며 설명했고요.
- TF를 모아놓고 컬처덱이 뭔지 설명하는 시간을 갖고요.
- 컬처덱에 대해 전체 리더님들에게 다시 브리핑하며 설명했고요.
- 리더분들 6명씩 5개팀을 만나면서 매번 컬처덱이 뭔지 또 설명했어요.
골자는
이건 이벤트가 아니다! 업무의 기준점이다!
명령하는 문서가 아니다! 멤버의 자격을 정하는 것이다!
노사간 협의문서가 아니다! 서로에게 명분이 될 수 있다!
그냥 표어처럼 붙어있는 게 아니다! 실무에서 작동해야 한다!
이런 조건들을 한~~~~~~~~~~~~~참 설명했네요. 일단 뭔지 알아야 의견을 내는 거니까요.
9개 질문의
6번의 미팅
- 01. 우리는 사명 또는 목표에 집중하고 있나요? 무엇이 목표인지 공유되었고 그 뜻을 이해하고 있나요?
- 02. 우리는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있나요? (명확성,정중함,진취성)
- 03. 우리는 투명하고 서로를 신뢰하고 있나요? 정보 공유가 한정적이거나, 뒤늦게 공유받는 경우가 있나요?
- 04. 우리는 팀워크를 촉진하고 있나요? 팀별 커뮤니케이션과 협업을 지원하는 제도나 행동규정이 있는지?
- 05. 우리는 피드백과 지원 문화를 갖고 있나요? (명확성, 섬세함, 문제해결)
- 06. 우리는 업무 몰입을 장려하고 있나요? 업무 몰입을 위한 지원제도, 시스템, 특유의 문화가 있는지?
- 07. 우리는 직원들에게 투자하고 있나요? (관계유지, 회복지원, 성장지원)
- 08. 우리는 다양성을 포용하고 있나요? (아이디어 반영, 절차/체계의 변화정도)
- 09. 우리는 재미있나요? 동료와 대화하는 즐거움 또는 일을 성취했을 때의 즐거움 등이 있는지?
조직의 현상태를 파악하는 카테고리를 9가지로 구분했어요. 맥킨지의 조직진단 질문을 강남센터에 맞게 변형했죠. 총 6번의 미팅이 있었고, 회차당 5~6명 정도의 리더+구성원분들이 함께 했습니다. 총원의 20%와 실제 인터뷰를 진행하고 동일한 질문을 온라인 서베이로 300명 모두에게 전달했습니다.
이게 은근 재미있었던게,
꼭 한 명씩은 스타트를 끊어주는 역할이 있으셨고
날카롭고 비판적인 질문을 하시는 한 명이 있었고
비관적인 다크포스를 지니신 분 한 명
티없이 맑은 긍정신도 한 명
이렇게 뭔가 밸런스가 항상 맞아있었어요. 저희의 역할은 딴데로 새는 이야기들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 뿐이었죠. 처음엔 막 2시간이요?!! 하면서 기겁을 하시더니.... 막상 10분도 안되어 수다력 급상승... 결국 2시간 안에 끝난 인터뷰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대문자 E들인줄...
아니 그러니까, 맞아, 그 때, 예를 들면, 어어 맞아, 아니 근데
실제로 말을 중간에 끊는 것이 더 힘들었던
바텀업 방식의
컬처덱
아주 긴 인삿말과 함께...서베이를
300명 중 30명을 만났고 10명의 TF와 63개의 응답이 있었습니다. 거의 전체 구성원의 1/3이 모두 참여한 형태였어요. 서베이를 그냥 뚝 던지면 안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긴 편지를 앞에 달아놓았죠. 질문 내용은 앞서 9개 조직진단 질문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놓은 형태였어요. 얼굴보고 설명할 수 없으니, 질문만 보고도 의도와 답변의 방향을 이해할 수 있어야 했거든요.
사실, 저흰 컬처덱이 딱히 바텀업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컬처덱은 조직이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과 행동들을 언급하는 것이다보니... 형태상 탑다운의 모습을 많이 띠게 됩니다.
그런데 서울대병원 강남센터나 예전 '아름다운 재단' 처럼 [리더가 정기/비정기적으로 바뀌는 곳], [오래 다닌 구성원이 많은 곳], [고객을 실제로 만나고 응대하는 곳] 의 경우엔 구성원의 발언권이 훨씬 큰 느낌이 있어요. 물론 컨펌과 최종 피드백은 리더가 하지만, 핵심 키워드나 주요 내용의 피드백 권한이 구성원에게 있는 것이죠.
문제는...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협의와 합치를 만들어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추상적인 단어를 쓰는 것인데, 저흰 추상적인 단어를..몹시 싫어하거든요. 언제나 쉬운 방법은 그지같은 결과를 부릅니다...
그래서 어려운 방법을 택했습니다. A와 B단어가 있다면 그 중 조직에 도움이 되는 A단어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죠. 소거법 형식을 취하면...불만이 많아집니다. [왜 내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느냐!!!!] 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올 수 있거든요.
이걸 막아주신 분이... 교수님이십니다.ㅠㅠ
덕분에 2,3번의 디테일한 피드백을 제외하곤 큰 방향성 수정없이 진행될 수 있었어요. 내용을 만드는 과정이 빡셌던 만큼, 결과물에 대해서도 다들 인정해주시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렇게 전체적인 내용이 정리되었습니다. 들어간 내용은 총 5가지의 구성으로 이루어졌어요.
01. 히스토리 : 컬처덱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02. 정체성 규정 : 서로를 채워주는 사람들이란 이름으로 구성원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설명해놨죠.
03. 역량 정리 : 그리고 서로를 채워주기 위해선 어떤 역량과 마인드가 필요한지 3가지로 정리했어요.
04. 행동 양식 : 그리고 구체적인 상황에 맞춰 10가지의 행동양식을 적어놨죠.
05. 체크리스트 : 각 행동양식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셀프/팀 차원에서 체크할 수 있는 체크질문 2가지씩을 달아놓았어요.
마지막으로 멋지게 디자인까지 완성했습니다. 지금은 디자인을 내려놓았지만... 이 땐 디자인까지 진행하던 시기였거든요. 각각의 키워드와 행동양식에 맞는 상징적 도형을 이용해보았어요. 모든 디자인은 강남센터의 브랜드컬러를 이용해 원톤으로 통일시켰습니다.
<맺으며>
처음엔 많이들 어색해하시고, 쭈뼛쭈뼛하셨어요. 가장 큰 건... [내가 뭐라고 했는지 적는거냐?] 라는 질문이 꽤 많았다는 점입니다. 기본적으로 위계가 깔려있는 업계이다보니, 완벽한 안전감을 갖기는 어려웠어요. 심지어 첫 미팅 때는 [나는 이게 큰 도움이 안될 것 같다. 그러나 열심히는 해보셔라] 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진행될수록, 열린 목소리를 내주시고 뭔가가 기대된다는 의견이 조금씩 들리기 시작하더라고요.
교수님에게 들은 얘기지만, 완성본을 공유했을 때 몇몇 분들은 울컥했다는 얘기도 전해들었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다, 위로받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구성원에게 컬처덱은 항상 압박과 강요의 메시지처럼 들리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게 위로가 될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게 되었어요.
내가 여기 왜 다니고 있는지.
왜 열심히 하고 있는지.
내가 끝까지 지켜내고자 했던 책임감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구나...
이런 메시지가 사람들을 얼마나 충만하게 만드는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실로 엄청난 프로젝트였습니다. 거의 반년에 가까운, 그리고 100여명의 의견을 정리해야 하는 과정에서 끝까지 (전투적으로) 함께 도와주신 김선신 교수님께 존경과 감사를 전하며 강남센터에서의 일상이 더욱 따뜻하고 멋진 일들로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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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서울대학교병원은 본원이 있고, 강남센터가 있습니다. 강남센터는 건강검진을 하는 곳이죠. 본원이 '치료'를 하는 곳이라면 강남센터는 아프기전에 '예방'과 '검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본원이 오늘을 만든다면, 강남센터는 내일을 만드는 곳이죠. 저희 장인어른께서도 이번에 여기서 건강검진을 받으셨어요. (급TMI)
강남센터엔 300여명의 의사, 간호사 등 다양한 직군의 멤버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를 거치며 꽤나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해요. 끈끈했던 동아리 활동 (병원은 의외로 이런 활동이 진짜 많습니다. 그리고 기대 이상으로 이런 동아리, 커뮤니티 활동에서 즐거움을 많이 찾으시더라고요. 슬의생의 밴드같은 느낌이랄까...)도 많이 줄어들었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입사했고, 원격근무, 마스크, 비말차단 아크릴판 등으로 서로의 소통엔 한 겹 장막이 생긴 후였습니다. 작년 9월 강남센터는 20주년을 맞이했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 시발점이 바로 컬처덱의 제작이었죠.
병원의 특성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일단, 병원은 생각보다 조직문화 활동을 많이 해요. 이미 조직문화 TF가 몇 년째 활동하고 있었던 상태였어요. 친절하고 배려넘치는 소통을 위한 캠페인도 하고 전사서베이도 하고 팀별 밍글링도 하고... 굉장히 이런저런 활동들이 많았더라고요.
그러나 벽에 붙어있는 핵심가치나 '고객중심 선언문'같은 표어를 제외하곤 기업처럼 하나의 목표를 위한 가치체계나 일하는 방식 등이 규정되어 있진 않았어요. 그도 그럴 것이 부서별로 너무도 업무가 다르기도 하고, 의료 업계 특성상 위계를 무시할 수도 없었어요. 기업처럼 팡!! 성장해서 IPO를 할 것도 아니고, 신기술이나 신제품 개발로 고객을 우와아아악 끌어모으는 비즈니스도 아니니까요.
어찌보면 잔잔하게 우상향하는 루틴과 안정성의 반복이랄까요. 생명을 다루는 곳이니 윤리와 지식축적, 연구, 서비스마인드같은 [엄격함과 체계]가 훨씬 중요한 것이죠.
엄격쓰
하지만, 또 막상 만나봬니 그런 건 아니더라고요. 한 분 한 분은 모두 다정하셨고 유쾌했고 역시나 똑똑하셨습니다. (물론 극T의 향기를 풍기시는 분들도 있었음)
이번 프로젝트를 제안해주시고 함께 했던 교수님은 이 강남센터의 초창기부터 함께 해오신 분이셨어요. 나중에도 얘기하겠지만, 교수님의 전폭적인 지지와 배려가 없었다면 진짜 끝까지 하기 힘들었을 거에요. 정말 거의 혼자서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시는 걸 보면서... 뭔가 안쓰럽고 막 눈물나고... 헥소고지같고...
여튼 만드는 과정은 꽤나 섬세했습니다.💦
컬처덱이 무엇이냐?
5번의 설명
뭔지도 모르는 걸 만들면서 협조를 구할 순 없습니다. 게다가 컬처덱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기도 하고요. 미션, 비전, 핵심가치같은 것이 벽에 적혀있긴 하지만요.
소오오올직히 말해서 컬처덱엔 그런 비전하우스 느낌의 가치체계를 적는 게 아니에요. 사실 원래 컬처덱을 퍼뜨렸던 실리콘밸리의 어떤 컬처덱에도 미션, 비전, 핵심가치...이런 게 적혀있진 않거든요. 본인들이 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일해야 성장하는지에 대해 설명해놨을 뿐이죠. 하지만 국내의, 게다가 [큰] 조직에게는 생소하고 이상한 자료임이 분명할 거에요. 그래서 처음에 이걸 설명하는데 꽤 많은 시간을 쏟았습니다.
골자는
이런 조건들을 한~~~~~~~~~~~~~참 설명했네요. 일단 뭔지 알아야 의견을 내는 거니까요.
9개 질문의
6번의 미팅
조직의 현상태를 파악하는 카테고리를 9가지로 구분했어요. 맥킨지의 조직진단 질문을 강남센터에 맞게 변형했죠. 총 6번의 미팅이 있었고, 회차당 5~6명 정도의 리더+구성원분들이 함께 했습니다. 총원의 20%와 실제 인터뷰를 진행하고 동일한 질문을 온라인 서베이로 300명 모두에게 전달했습니다.
이게 은근 재미있었던게,
이렇게 뭔가 밸런스가 항상 맞아있었어요. 저희의 역할은 딴데로 새는 이야기들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 뿐이었죠. 처음엔 막 2시간이요?!! 하면서 기겁을 하시더니.... 막상 10분도 안되어 수다력 급상승... 결국 2시간 안에 끝난 인터뷰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대문자 E들인줄...
실제로 말을 중간에 끊는 것이 더 힘들었던
바텀업 방식의
컬처덱
300명 중 30명을 만났고 10명의 TF와 63개의 응답이 있었습니다. 거의 전체 구성원의 1/3이 모두 참여한 형태였어요. 서베이를 그냥 뚝 던지면 안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긴 편지를 앞에 달아놓았죠. 질문 내용은 앞서 9개 조직진단 질문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놓은 형태였어요. 얼굴보고 설명할 수 없으니, 질문만 보고도 의도와 답변의 방향을 이해할 수 있어야 했거든요.
사실, 저흰 컬처덱이 딱히 바텀업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컬처덱은 조직이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과 행동들을 언급하는 것이다보니... 형태상 탑다운의 모습을 많이 띠게 됩니다.
그런데 서울대병원 강남센터나 예전 '아름다운 재단' 처럼 [리더가 정기/비정기적으로 바뀌는 곳], [오래 다닌 구성원이 많은 곳], [고객을 실제로 만나고 응대하는 곳] 의 경우엔 구성원의 발언권이 훨씬 큰 느낌이 있어요. 물론 컨펌과 최종 피드백은 리더가 하지만, 핵심 키워드나 주요 내용의 피드백 권한이 구성원에게 있는 것이죠.
문제는...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협의와 합치를 만들어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추상적인 단어를 쓰는 것인데, 저흰 추상적인 단어를..몹시 싫어하거든요. 언제나 쉬운 방법은 그지같은 결과를 부릅니다...
그래서 어려운 방법을 택했습니다. A와 B단어가 있다면 그 중 조직에 도움이 되는 A단어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죠. 소거법 형식을 취하면...불만이 많아집니다. [왜 내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느냐!!!!] 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올 수 있거든요.
이걸 막아주신 분이... 교수님이십니다.ㅠㅠ
덕분에 2,3번의 디테일한 피드백을 제외하곤 큰 방향성 수정없이 진행될 수 있었어요. 내용을 만드는 과정이 빡셌던 만큼, 결과물에 대해서도 다들 인정해주시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렇게 전체적인 내용이 정리되었습니다. 들어간 내용은 총 5가지의 구성으로 이루어졌어요.
마지막으로 멋지게 디자인까지 완성했습니다. 지금은 디자인을 내려놓았지만... 이 땐 디자인까지 진행하던 시기였거든요. 각각의 키워드와 행동양식에 맞는 상징적 도형을 이용해보았어요. 모든 디자인은 강남센터의 브랜드컬러를 이용해 원톤으로 통일시켰습니다.
<맺으며>
처음엔 많이들 어색해하시고, 쭈뼛쭈뼛하셨어요. 가장 큰 건... [내가 뭐라고 했는지 적는거냐?] 라는 질문이 꽤 많았다는 점입니다. 기본적으로 위계가 깔려있는 업계이다보니, 완벽한 안전감을 갖기는 어려웠어요. 심지어 첫 미팅 때는 [나는 이게 큰 도움이 안될 것 같다. 그러나 열심히는 해보셔라] 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진행될수록, 열린 목소리를 내주시고 뭔가가 기대된다는 의견이 조금씩 들리기 시작하더라고요.
교수님에게 들은 얘기지만, 완성본을 공유했을 때 몇몇 분들은 울컥했다는 얘기도 전해들었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다, 위로받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구성원에게 컬처덱은 항상 압박과 강요의 메시지처럼 들리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게 위로가 될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게 되었어요.
이런 메시지가 사람들을 얼마나 충만하게 만드는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실로 엄청난 프로젝트였습니다. 거의 반년에 가까운, 그리고 100여명의 의견을 정리해야 하는 과정에서 끝까지 (전투적으로) 함께 도와주신 김선신 교수님께 존경과 감사를 전하며 강남센터에서의 일상이 더욱 따뜻하고 멋진 일들로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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