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온원, 면담, 피드백, 커피챗... 뭐라고 이름을 붙여도 결국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다는 포맷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아 이런 대화가 아니고...
이것은 서로 다른 곳에서 탄생하고, 형성된 두 우주가 부딪히는 것을 의미하죠. 우리는 서로의 우주에서 어떤 언어가 통하는지, 어떤 시그널로 해석되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한글은 우리 모두가 쓰고 있는 일종의 기호일 뿐, 그 의미는 모두가 다르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맥주라는 단어는 기가 막힌 시원함의 상징이 될 수도, 그저 배를 아프게 하는 목 따가운 음료가 되기도 합니다. 음성과 기호는 그저 같은 '대상'을 지시하는 것일 뿐, 그 의미를 함축하지 못하죠.
우린 비슷해 보이지만 멀티버스에서 모인 것과 같습니다.
운이 좋아, 비슷한 우주의 형태를 갖고 있다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서로의 우주를 여행하는데 큰 에너지가 들지 않으니까요. 마치 일본 여행을 간 듯한 느낌이죠. 또는 여러 경험과 노력으로 완전히 다른 두 세계를 이해했다면 더욱 깊은 관계가 될 수도 있겠네요. 이는 난이도 높은 인도 여행 정도라고 비유할 수도 있겠습니다.
관계를 만드는 건 친절이 아니라 오히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용기라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판단을 미루는 데에는 꽤나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불편함을 기꺼이 이겨내야 하거든요. 친절은 용기를 둘러싼 부드러운 포장지 같은 것이지요.
우린 서로의 세계를
전혀 모른다는 전제로
대화해야 합니다.
이 때 핵심이 되는 건 '내 세계'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 세계의 신호체계'를 먼저 물어보는 것이죠.
우리는 종종 '솔직한' 대화라는 것을 오해합니다. 마치 나의 치부나 숨겨왔던 억하심정을 무례하게 내던지는 걸 솔직하다고 표현할 때도 있죠. 솔직함은 토해내는 감정이 아닙니다. 우리가 솔직히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나는 모른다' 라는 사실이죠.
나는 지금 당신의 의도나 마음을 잘 몰라요.
하지만 듣고 싶고,
배워서 도와보고 싶어요.
모든 대화는 이 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내가 너보다 더 살아서 널 이해할 수도 없고,
- 박사 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당신을 더 잘 이해하는 것도 아닙니다.
- 직급이 높다고 이해력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 사람을 많이 만나봤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같은 것도 아닙니다.
반면 모든 갈등은 '내 세계의 룰을 너에게 가르쳐주겠다.' 라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세계를 침략해, 열심히 성장하는 도시의 지배자가 되겠다는 의미와도 같으니까요. 원온원이 어색하고, 면담에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고, 구성원과 대화를 하기 어렵다면... 어색한 아재개그나 괜한 드립보다, 저 한 마디가 좋은 출발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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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런 대화가 아니고...
이것은 서로 다른 곳에서 탄생하고, 형성된 두 우주가 부딪히는 것을 의미하죠. 우리는 서로의 우주에서 어떤 언어가 통하는지, 어떤 시그널로 해석되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한글은 우리 모두가 쓰고 있는 일종의 기호일 뿐, 그 의미는 모두가 다르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맥주라는 단어는 기가 막힌 시원함의 상징이 될 수도, 그저 배를 아프게 하는 목 따가운 음료가 되기도 합니다. 음성과 기호는 그저 같은 '대상'을 지시하는 것일 뿐, 그 의미를 함축하지 못하죠.
우린 비슷해 보이지만 멀티버스에서 모인 것과 같습니다.
운이 좋아, 비슷한 우주의 형태를 갖고 있다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서로의 우주를 여행하는데 큰 에너지가 들지 않으니까요. 마치 일본 여행을 간 듯한 느낌이죠. 또는 여러 경험과 노력으로 완전히 다른 두 세계를 이해했다면 더욱 깊은 관계가 될 수도 있겠네요. 이는 난이도 높은 인도 여행 정도라고 비유할 수도 있겠습니다.
관계를 만드는 건 친절이 아니라 오히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용기라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판단을 미루는 데에는 꽤나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불편함을 기꺼이 이겨내야 하거든요. 친절은 용기를 둘러싼 부드러운 포장지 같은 것이지요.
우린 서로의 세계를
전혀 모른다는 전제로
대화해야 합니다.
이 때 핵심이 되는 건 '내 세계'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 세계의 신호체계'를 먼저 물어보는 것이죠.
우리는 종종 '솔직한' 대화라는 것을 오해합니다. 마치 나의 치부나 숨겨왔던 억하심정을 무례하게 내던지는 걸 솔직하다고 표현할 때도 있죠. 솔직함은 토해내는 감정이 아닙니다. 우리가 솔직히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나는 모른다' 라는 사실이죠.
모든 대화는 이 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모든 갈등은 '내 세계의 룰을 너에게 가르쳐주겠다.' 라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세계를 침략해, 열심히 성장하는 도시의 지배자가 되겠다는 의미와도 같으니까요. 원온원이 어색하고, 면담에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고, 구성원과 대화를 하기 어렵다면... 어색한 아재개그나 괜한 드립보다, 저 한 마디가 좋은 출발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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