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덱을 만든다고 하면, [응, 그런 메시지 그냥 뻔한 말 쓰는 거야] 라고 냉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 컬처덱을 만드는 이유는 좀 더 다른 곳에 있죠. 조직 문화를 바라볼 때 구성원들이 단순히 '어떤 행동을 하냐 안 하냐로 구분하는 것'은 문제를 너무 단순화시켜 놓은 것입니다.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나는 룰을 어기고 있어] 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자신은 룰을 잘 지켰는데, 왜 잘못했다고 하는지 억울하다고 말하죠. 그렇다면 그들이 따르는 룰은 어떤 것일까요?
룰은 행동이나 사고의 기준이 되는 특정한 패턴을 말합니다. 집단에 속한 인간은 그 집단에서 생존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패턴을 빠르게 찾아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행동은 그저 무조건적 관찰로 정의 내리기엔 몹시 복잡하고, 심지어 회사에선 이런 일들이 너무도 어지럽게 얽혀 일어나는 것이죠.
이 때 사람들이 택하는 방식은 [모수]를 좁히는 방식입니다. 내가 관찰 가능한 범위로 모수를 좁히면 그 안에서 발생하는 행위의 경향성을 쉽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관찰과 고민에 드는 에너지도 줄일 수 있죠.
회사 내에서 내가 관찰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 일까요?
우린 모두를 볼 수 없습니다.
업무 접점 또는 친밀감, 동기, 소속 정도로 비교적 한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성원은 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 이 집단 내부에서 통용되고 행위화된 [룰]을 지키는 것이죠. (사일로와는 다릅니다. 사일로는 [집단]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이건 관찰자 혼자만의 생각입니다.)
단순히 관찰 가능한 범위의 [모수]를 모두 선택했다면 그리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경우 구성원이 관찰 가능한 사건은 적어도 2개 이상의 복수 형태일 것이고, 서로 다른 사건들은 서로를 상쇄시키며 확증 편향을 완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다른 선택을 할 여지가 있죠.
그러나, 관찰되는 영역은 일반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 또 하나의 변수입니다. 관찰자가 비판적 사고를 지니고, 각각의 구성원과 사건 사이에 벌어지는 인과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요. 만약 그렇지 않고, 단순히 자극성이나 친밀감 등에 의해 성급하게 결론내린 [모수]들을 기반으로 룰을 찾는다면, 당연히 조직의 방향과는 다른 해석이 등장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많은 구성원들이 자신 주변의 몇몇 사람들의 행동 중 특별히 눈에 띄는 (그게 전체의 룰과 어긋남과는 별개로) 일부의 행동을 소위 [판단의 모수]로 삼습니다. 그 안에서 룰을 특정하고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하죠. 이로써 대표님의 타운홀 연설보다, 당장 내 옆자리 동료의 농땡이가 더 유효한 정보가 되는 것입니다.
프로세스를 단순화시키긴 했지만 이처럼 "모수의 자의적 판단"은 모두가 룰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조직은 그렇지 않다고 우기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서로가 사정이 있고 억울한 프레임으로 번지면서 해명과 설득이 어려워지죠.)
때문에 조직 차원에서 고민해야 하는 것은 전체 구성원에게 특정한 룰을 전파하는 행위 자체가 아닙니다.
그 룰을 대표하시는 집단은 누구인지
그 집단이 나머지 구성원에게 관찰 가능한 영역에 있는지
이 두 가지를 확인해야 하는 것이죠.
컬처덱의 역할은 [모두가 바라봐야 할 모수를 특정하고, 그 특성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조직이 먼저 규정해야 할 것은 3가지일 것 같습니다.
- 무엇이 모범인지 규정되어 있는가
- 모범이 되는 모수가 조직 내에 존재하는가
- 그 모수들 사이에서 어떤 패턴과 사건이 발생하는가
조직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를 모범적으로 보여줄 집단이 내부에 [이미 존재]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먼저 그런 사건과 소규모 조직을 만들어내야 할 것입니다. 개인은 개인의 통로로 집단과 연결되지 않습니다. 개인은 하위의 더 작은 집단을 통해 상위 집단과 연결되죠.
사람들은 하위 집단의 [사건]을 통해서 상위 집단의 메시지를 이해합니다. 그리고 학습된 메시지를 통해 다시 사건을 재해석하죠.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동등하게 생각하는 메시지와 사건은 교환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보완 관계에 있습니다.
메시지란 사건의 앞과 뒤를 설명하는 맥락이고, 사건은 메시지의 증거 역할을 하죠.
메시지를 열심히 구상하고 설계하는 것은 부차적인 일입니다. 작성 자체는 누구나 할 수 있고,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한 장을 쓰든, 한 줄을 쓰든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엔 메시지가 사건에 의해 검증되고 인정받고 작동하고 있느냐가 핵심입니다. 이는 결국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묘한 풍경을 관찰해야 하고 아주 느리게 흘러가는 그 경향성을 짐작해야 하는 몹시도 섬세하고 어려운 작업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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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덱을 만든다고 하면, [응, 그런 메시지 그냥 뻔한 말 쓰는 거야] 라고 냉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 컬처덱을 만드는 이유는 좀 더 다른 곳에 있죠. 조직 문화를 바라볼 때 구성원들이 단순히 '어떤 행동을 하냐 안 하냐로 구분하는 것'은 문제를 너무 단순화시켜 놓은 것입니다.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나는 룰을 어기고 있어] 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자신은 룰을 잘 지켰는데, 왜 잘못했다고 하는지 억울하다고 말하죠. 그렇다면 그들이 따르는 룰은 어떤 것일까요?
룰은 행동이나 사고의 기준이 되는 특정한 패턴을 말합니다. 집단에 속한 인간은 그 집단에서 생존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패턴을 빠르게 찾아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행동은 그저 무조건적 관찰로 정의 내리기엔 몹시 복잡하고, 심지어 회사에선 이런 일들이 너무도 어지럽게 얽혀 일어나는 것이죠.
이 때 사람들이 택하는 방식은 [모수]를 좁히는 방식입니다. 내가 관찰 가능한 범위로 모수를 좁히면 그 안에서 발생하는 행위의 경향성을 쉽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관찰과 고민에 드는 에너지도 줄일 수 있죠.
회사 내에서 내가 관찰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 일까요?
우린 모두를 볼 수 없습니다.
업무 접점 또는 친밀감, 동기, 소속 정도로 비교적 한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성원은 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 이 집단 내부에서 통용되고 행위화된 [룰]을 지키는 것이죠. (사일로와는 다릅니다. 사일로는 [집단]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이건 관찰자 혼자만의 생각입니다.)
단순히 관찰 가능한 범위의 [모수]를 모두 선택했다면 그리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경우 구성원이 관찰 가능한 사건은 적어도 2개 이상의 복수 형태일 것이고, 서로 다른 사건들은 서로를 상쇄시키며 확증 편향을 완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다른 선택을 할 여지가 있죠.
그러나, 관찰되는 영역은 일반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 또 하나의 변수입니다. 관찰자가 비판적 사고를 지니고, 각각의 구성원과 사건 사이에 벌어지는 인과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요. 만약 그렇지 않고, 단순히 자극성이나 친밀감 등에 의해 성급하게 결론내린 [모수]들을 기반으로 룰을 찾는다면, 당연히 조직의 방향과는 다른 해석이 등장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많은 구성원들이 자신 주변의 몇몇 사람들의 행동 중 특별히 눈에 띄는 (그게 전체의 룰과 어긋남과는 별개로) 일부의 행동을 소위 [판단의 모수]로 삼습니다. 그 안에서 룰을 특정하고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하죠. 이로써 대표님의 타운홀 연설보다, 당장 내 옆자리 동료의 농땡이가 더 유효한 정보가 되는 것입니다.
프로세스를 단순화시키긴 했지만 이처럼 "모수의 자의적 판단"은 모두가 룰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조직은 그렇지 않다고 우기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서로가 사정이 있고 억울한 프레임으로 번지면서 해명과 설득이 어려워지죠.)
때문에 조직 차원에서 고민해야 하는 것은 전체 구성원에게 특정한 룰을 전파하는 행위 자체가 아닙니다.
그 룰을 대표하시는 집단은 누구인지
그 집단이 나머지 구성원에게 관찰 가능한 영역에 있는지
이 두 가지를 확인해야 하는 것이죠.
컬처덱의 역할은 [모두가 바라봐야 할 모수를 특정하고, 그 특성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조직이 먼저 규정해야 할 것은 3가지일 것 같습니다.
조직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를 모범적으로 보여줄 집단이 내부에 [이미 존재]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먼저 그런 사건과 소규모 조직을 만들어내야 할 것입니다. 개인은 개인의 통로로 집단과 연결되지 않습니다. 개인은 하위의 더 작은 집단을 통해 상위 집단과 연결되죠.
사람들은 하위 집단의 [사건]을 통해서 상위 집단의 메시지를 이해합니다. 그리고 학습된 메시지를 통해 다시 사건을 재해석하죠.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동등하게 생각하는 메시지와 사건은 교환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보완 관계에 있습니다.
메시지를 열심히 구상하고 설계하는 것은 부차적인 일입니다. 작성 자체는 누구나 할 수 있고,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한 장을 쓰든, 한 줄을 쓰든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엔 메시지가 사건에 의해 검증되고 인정받고 작동하고 있느냐가 핵심입니다. 이는 결국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묘한 풍경을 관찰해야 하고 아주 느리게 흘러가는 그 경향성을 짐작해야 하는 몹시도 섬세하고 어려운 작업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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