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움직이는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을 거에요. 우리는 흔히 ‘말’이 사람을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정말 ….[실제로 잘 듣지 않아요.]
사람의 행동엔 더 깊숙한 메커니즘이 존재합니다.
길 가다가 누군가에게 죽빵을 맞으면, 기분이 나쁠까요. 별이 먼저 보일까요. 대부분 전자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인간은 상황 파악에 시간이 좀 걸립니다. 심지어 통각이 제대로 작동하기 전까진 그냥 '충격' 그 자체를 느낄 뿐 이게 아픈 건지 뜨거운 건지도 잘 몰라요. 강한 충격으로 신체 부위가 손상되었고, 죽빵을 맞았다는 걸 인지하는 순간 고통이 시작되죠.
이걸 입력자극이라고 합니다. 입력자극은 앞서 말한 것 같은 물리적 입력자극과 사회적 입력자극으로 나뉘어요.
🤕
물리적 입력자극은 심부름을 개판으로 해온 나를 쳐다보는 아내의 눈빛 같은 겁니다. 이것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고, 그저 외부의 여러 요인(흔들리는 공기, 매서운 눈빛 등)을 통해 '다가올 죽음'에 대해 인지하는 것이죠.
🙃
사회적 입력자극은 간만에 청소를 해놓고 칭찬을 유도했을 때 아내가 자비롭게 칭찬을 선사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원할 때나, 또는 시선을 끌 때 의도한 반응을 받는 것이죠.
😨 앞선 물리적 입력자극은 '피할 것'을 선별하게 만들고
🤗 사회적 입력자극은 '추구할 것'을 선별하게 만듭니다.
선별이란 건, [앞으로를 대비하는 것]이죠. 어차피 내일 죽을 거라면 선별해서 뭐하겠어요. 그래서 모든 입력자극은 '예측'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감정은 '예측'이죠. 심리/신경과학자인 리사 펠드먼 배럿 박사는 감정을 '주의 깊게 제어된 환각' 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 정의를 입력자극에 대응하면 이렇게 될 겁니다.
- 주의 깊게 = [입력자극에 의해 선별된]
- 환각 = [예측]
우리는 세계를 선형적으로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맥락]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극은 개별적으로 받아들여지죠. 뇌는 눈이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듣는 것이 KPI인지, 헛소리인지 뇌는 몰라요.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외워야 하는 건지도 분간하지 못하죠. 뇌는 상황을 모릅니다. 스트레스의 정도만을 파악하죠.🤯
그러니 [어떤 자극들이 있을 때 스트레스가 높냐 낮냐] 만을 기억합니다.
- 대표님
- 타운홀
- 모여있다
- 노트북
- 졸려
- 블라블라
- 에어컨 추워
- 입 다물기
이 모든 것은 그저 시각, 청각, 촉각 자극일 뿐이잖아요. 이 때 스트레스 지수가 58,000이라면 이 상황을 기억하는 거죠. 그리고 비슷한 상황만 닥쳐도 불쾌한 감정을 불러 일으킵니다. (이 때 스트레스는 긍정적인 긴장과는 조금 다릅니다. 그냥 짜증나는 걸 의미합니다.)
구성원은 회사에서 수많은 입력자극들을 받습니다. 대부분의 부정적인 자극들은 '인내심' 이라고 불리는 역치 허들에 걸려 사라지지만, 패턴이 반복되면 예측의 대상이 됩니다. 이 패턴에 스트레스를 경험한 구성원은 그 중 몇 개의 자극만 비슷해도 바로 미간을 찌푸릴 겁니다.
두 가지 자극만으로도 예측된 환각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죠.
아 젠장 또 재미없는 거 시작한다.
사실, 이 환각이 재생되기 시작하면 앞에서 아무리 금빛 발언을 해도 무의미해집니다. 현실은 결국 각자의 장(場)에서 해석되기 때문에, 사실 구성원은 현실을 보는 게 아닌 [환각]을 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거든요.
<여기서, 담당자 드드등장>
조직문화 담당자는 끊임없이 등장하는 잘못된 패턴들을 발견하고, 반복되지 않도록 두둘겨 깨기 시작합니다. (두더지 게임처럼) 그러나,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사실은 그게 아니에요!!] 라고 부정할수록 학습된 패턴을 더 강화하는 프레임 효과 때문이죠.
담당자는 좀 더 다른 방식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바로 [다른 인식]을 만드는 거죠. 기존의 프레임을 깨는 대신, 새로운 프레임을 보여주거나 덧씌웁니다. 담당자가 재미있는 이벤트를 구성하고 편지를 쓰고, 풍선을 다는 고차원적인 이유죠. 회사는 원래 출근하자마자 피곤해지는 곳이라는 선입견이 가득한 구성원들에게 말하는 겁니다.
"그게 아니에요!"가 아니라 "재밌는 경우"도 있어요! 라고 말이죠.
맞습니다. 반대의 입력자극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부정적으로만 받아 들여지지 않도록 [즐거운 상황]도 함께 만들어내는 것이죠. 타운홀에서 이벤트도 하고, 웃긴 프로그램도 만들고, 모여서 운동회도 합니다. "자극의 중립성"을 위해서죠. 이렇게 중립적인 자극을 겪으면 구성원들은 즉각적인 예측을 보류하게 됩니다. 이게 [조직문화가 받아들여질 준비]가 된 상태입니다.
스스로 만들어 낸 극단적인 환각 속에 허우적대며 살고 있다면, 기묘한 이야기에 등장한 '뒤집힌 세계'에서 방황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어요.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어떤 말도 뒤틀려 들릴 텐데요. 조직문화 담당자들이 밤새고 몸 갈아 넣어가며 영상 만들고, 이름표에 종이넣고, 풍선 불고, 현수막 붙이고, 팝콘 튀기는 이유는. 여기가 에버랜드여서가 아닙니다. 지루하고 긴장되는 모든 상황에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하려는 노력들이겠죠. 변화의 여지를 만드는 고군분투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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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움직이는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을 거에요. 우리는 흔히 ‘말’이 사람을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정말 ….[실제로 잘 듣지 않아요.]
사람의 행동엔 더 깊숙한 메커니즘이 존재합니다.
길 가다가 누군가에게 죽빵을 맞으면, 기분이 나쁠까요. 별이 먼저 보일까요. 대부분 전자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인간은 상황 파악에 시간이 좀 걸립니다. 심지어 통각이 제대로 작동하기 전까진 그냥 '충격' 그 자체를 느낄 뿐 이게 아픈 건지 뜨거운 건지도 잘 몰라요. 강한 충격으로 신체 부위가 손상되었고, 죽빵을 맞았다는 걸 인지하는 순간 고통이 시작되죠.
이걸 입력자극이라고 합니다. 입력자극은 앞서 말한 것 같은 물리적 입력자극과 사회적 입력자극으로 나뉘어요.
🤕
물리적 입력자극은 심부름을 개판으로 해온 나를 쳐다보는 아내의 눈빛 같은 겁니다. 이것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고, 그저 외부의 여러 요인(흔들리는 공기, 매서운 눈빛 등)을 통해 '다가올 죽음'에 대해 인지하는 것이죠.
🙃
사회적 입력자극은 간만에 청소를 해놓고 칭찬을 유도했을 때 아내가 자비롭게 칭찬을 선사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원할 때나, 또는 시선을 끌 때 의도한 반응을 받는 것이죠.
😨 앞선 물리적 입력자극은 '피할 것'을 선별하게 만들고
🤗 사회적 입력자극은 '추구할 것'을 선별하게 만듭니다.
선별이란 건, [앞으로를 대비하는 것]이죠. 어차피 내일 죽을 거라면 선별해서 뭐하겠어요. 그래서 모든 입력자극은 '예측'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감정은 '예측'이죠. 심리/신경과학자인 리사 펠드먼 배럿 박사는 감정을 '주의 깊게 제어된 환각' 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 정의를 입력자극에 대응하면 이렇게 될 겁니다.
우리는 세계를 선형적으로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맥락]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극은 개별적으로 받아들여지죠. 뇌는 눈이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듣는 것이 KPI인지, 헛소리인지 뇌는 몰라요.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외워야 하는 건지도 분간하지 못하죠. 뇌는 상황을 모릅니다. 스트레스의 정도만을 파악하죠.🤯
그러니 [어떤 자극들이 있을 때 스트레스가 높냐 낮냐] 만을 기억합니다.
이 모든 것은 그저 시각, 청각, 촉각 자극일 뿐이잖아요. 이 때 스트레스 지수가 58,000이라면 이 상황을 기억하는 거죠. 그리고 비슷한 상황만 닥쳐도 불쾌한 감정을 불러 일으킵니다. (이 때 스트레스는 긍정적인 긴장과는 조금 다릅니다. 그냥 짜증나는 걸 의미합니다.)
구성원은 회사에서 수많은 입력자극들을 받습니다. 대부분의 부정적인 자극들은 '인내심' 이라고 불리는 역치 허들에 걸려 사라지지만, 패턴이 반복되면 예측의 대상이 됩니다. 이 패턴에 스트레스를 경험한 구성원은 그 중 몇 개의 자극만 비슷해도 바로 미간을 찌푸릴 겁니다.
두 가지 자극만으로도 예측된 환각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죠.
사실, 이 환각이 재생되기 시작하면 앞에서 아무리 금빛 발언을 해도 무의미해집니다. 현실은 결국 각자의 장(場)에서 해석되기 때문에, 사실 구성원은 현실을 보는 게 아닌 [환각]을 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거든요.
<여기서, 담당자 드드등장>
조직문화 담당자는 끊임없이 등장하는 잘못된 패턴들을 발견하고, 반복되지 않도록 두둘겨 깨기 시작합니다. (두더지 게임처럼) 그러나,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사실은 그게 아니에요!!] 라고 부정할수록 학습된 패턴을 더 강화하는 프레임 효과 때문이죠.
담당자는 좀 더 다른 방식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바로 [다른 인식]을 만드는 거죠. 기존의 프레임을 깨는 대신, 새로운 프레임을 보여주거나 덧씌웁니다. 담당자가 재미있는 이벤트를 구성하고 편지를 쓰고, 풍선을 다는 고차원적인 이유죠. 회사는 원래 출근하자마자 피곤해지는 곳이라는 선입견이 가득한 구성원들에게 말하는 겁니다.
"그게 아니에요!"가 아니라 "재밌는 경우"도 있어요! 라고 말이죠.
맞습니다. 반대의 입력자극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부정적으로만 받아 들여지지 않도록 [즐거운 상황]도 함께 만들어내는 것이죠. 타운홀에서 이벤트도 하고, 웃긴 프로그램도 만들고, 모여서 운동회도 합니다. "자극의 중립성"을 위해서죠. 이렇게 중립적인 자극을 겪으면 구성원들은 즉각적인 예측을 보류하게 됩니다. 이게 [조직문화가 받아들여질 준비]가 된 상태입니다.
스스로 만들어 낸 극단적인 환각 속에 허우적대며 살고 있다면, 기묘한 이야기에 등장한 '뒤집힌 세계'에서 방황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어요.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어떤 말도 뒤틀려 들릴 텐데요. 조직문화 담당자들이 밤새고 몸 갈아 넣어가며 영상 만들고, 이름표에 종이넣고, 풍선 불고, 현수막 붙이고, 팝콘 튀기는 이유는. 여기가 에버랜드여서가 아닙니다. 지루하고 긴장되는 모든 상황에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하려는 노력들이겠죠. 변화의 여지를 만드는 고군분투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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